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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이야기 동쪽과 서쪽 사이에 길을 잃어버린 나라

by 리얼 2024. 3. 19.

색소폰 빌리가 추진하려고 했던 그루지야의 친서방화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2016년 트빌리시는 몇 년 전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맥도날드 매장이 늘면서 관광객도 늘고 있지만 트빌리시 상권은 점점 터키 어린이들에게 장악되고 있습니다. 아우라는 유럽인이 보이지 않고 수준 낮은 터키 어린이들이 육로를 넘어 조지아 주로 대거 진출했습니다. 건설과 전통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터키 어린이들이 현재 시내에 케이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트빌리시 시내에는 히잡을 쓴 여성도 있었습니다. 가게에 들어가보면 대부분의 영어와 러시아어를 할 줄 모릅니다. 무엇보다 일감이 부족해 일제 중고차 택시에 가만히 앉아 밤새워 도로를 기다리는 젊은 운전자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트빌리시 공항으로 가는 길에 카지노 광고만 번쩍였어요. 조지아는 동쪽과 서쪽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조지아 이야기 : 동쪽과 서쪽 사이에 길을 잃어버린 나라 목차

1. 러시아에서 조지아로 가는 길

2. 조지아 샤커스빌리의 쿠데타

3. 러시아와 조지아의 전쟁

4. 조지아의 정권 교체

5. 우울한 조지아의 현실

 

조지아

 

 

1. 러시아에서 조지아로 가는 길

 

러시아 블라디카프카즈에서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로 가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도로 자체가 대부분 해발 2천 미터 이상 고산지대를 통과해야 합니다. 약 300년 전 제정 러시아 때 군사용으로 만들어진 길이라 폭은 좁고 안전장치도 전무합니다. 카즈베기 산을 넘을 때는 4월 하순인데도 아직 눈이 남아 있었고,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터널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산의 경사면을 구불구불 돌았을 때는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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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거대한 카즈베기산은 아름다웠습니다. 카프카즈의 아름다운 절벽을 구경할 때 현지 가이드는 우스갯소리로 이곳 절벽은 조심해야 합니다. 발을 헛디뎌지지 않도록요. 만약 발을 헛디뎌 절벽으로 떨어지면 오른쪽을 보는 것을 잊지 마세요. 대단한 절경을 놓치는 게 아쉽잖아요 라고 말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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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동아시아 산들과는 달리 카프카즈의 산들은 거의 90도에 가까운 수직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절벽 위에는 십자가가 달린 작은 성당이 있습니다.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팔만대장금을 만드는 심정으로 기독교인 조지아 사람들은 인근의 압도적인 이슬람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이 성당을 만들었습니다. 눈 덮인 수직 절벽에 아슬아슬한 성당을 보기 위해 유럽과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조지아를 방문합니다.

 

북커프 카즈의 이 군사용 도로에는 많은 컨테이너 차량이 다니고 있습니다. 40피터의 대형 컨테이너 차량이 터널을 통과할 때는 잠시 기다려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오도가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터널보다 더 기다려야 하는 곳은 국경 통관입니다. 조지아로 넘어가는 블라디카프카즈 국경에는 수백 대의 컨테이너 차량이 통과하기 위해 줄지어 대기하고 있습니다. 여기 기사는 인내의 신들입니다. 러시아의 엄격한 통관 요구에 맞추려면 짧게는 하루, 심지어 일주일 동안 국경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주로 터키와 유럽 제품을 러시아 내륙으로 운송하는 차량인데 국경 통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빼앗긴다고 합니다.

 

 

2. 조지아 샤커스빌리의 쿠데타

 

조지아는 고대 실크로드 북부 노선이 통과하는 중앙 카프카즈에 위치한 덕분에 예로부터 동쪽과 서쪽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조지아 정부도 경제 규모가 작고 내수 시장이 좁은 자국 상황을 고려해 교통 물류 중심지(hub)를 국가 발전 전략으로 이미 오래전 채택했습니다. 그래서 도로 개발, 통관 절차 개혁 등을 추진했지만 2008년 샤커스빌리의 무모한 도발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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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커스빌리는 2003년 장미혁명으로 당시 친러정부를 무너뜨리고 친미정부를 앞세워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불과 36세였습니다. 샤커스빌리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유학한 친미파였습니다. 대통령 당선 후 그는 학교에서 러시아어 교육을 폐지하고 친서방, EU와 NATO 가입을 주장하며 러시아와 담을 쌓았습니다. 경제정책으로서 사카슈빌리는 재정 안정화, 개방 무역 확대, 규제 및 세제 완화, 사유화 확대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유라시아 지역에 갑자기 출현한 친미 정부 샤커스빌리를 지원하기 위해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를 통해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2004~2007년에는 조지아주는 연평균 9.5%에 달하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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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약 450만의 절대빈곤국인 이 나라에 미국이 알선한 국제원조나 투자가 1억달러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외형적으로 경제는 성장하게 돼 있습니다. 샤커스빌리 재임 당시 성장은 수출과 내수가 회복됐기 때문이 아니라 외국인 직접투자, 공적개발원조(ODA), 해외송금(overseas remittance) 등 해외자본의 영향력이 절대적입니다. 게다가 조지아에 들어온 투자는 산업이나 인력 개발이 아니라 주로 에너지 인프라와 부동산 개발에 집중됐습니다. 이 결과 조지아 경제는 무역 적자와 함께 만성적인 고실업률, 그리고 심각한 빈부 격차를 낳았습니다. 2008년 지니계수는 0.413으로 카프카즈와 중앙아시아 국가 중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수도 트빌리시에 가보면 지하철에는 구걸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3. 러시아와 조지아의 전쟁

 

2008년 샤커스빌리는 점차 국민들의 불만을 불식시키기 위해 무모하게도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1991년 독립 이후 조지아는 러시아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조지아와 타민족 압하지야와 남오세아티아와 지속적인 분쟁을 겪고 있었습니다. 샤카스빌리는 미국과 EU의 지원을 믿고 2008년 8월 남오세아티아를 선제공격해 러시아가 침공할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당시 5일간의 전투에서 조지아 군경과 민간인이 사망했고 수도 트빌리시는 함락 직전의 상황에 빠졌습니다. 조지아의 붕괴를 우려한 서방의 압력으로 러시아와 조지아는 휴전협정을 맺게 되는데, 이 기회를 틈타 압하지야와 남오세아티아는 독립공화국을 선언하게 됩니다. 조지아는 나라의 30%가 잘립니다. 가장 큰 문제는 러시아 남부로 이어지는 압하지야가 단절되면서 이제 러시아와의 물류는 험난한 북카프카즈 군사도로밖에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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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즈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은 트빌리시에서 러시아 남부 휴양지인 소치로 갈 길이 없다는 사실에 당황합니다. 이 두 도시 사이의 도로는 577km에 불과해요. 길도 좋고 흑해안의 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치에서 북카프카즈를 통해 트빌리시로 가려면 약 1천km로 엄청난 산맥을 통과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지금 대부분의 컨테이너 화물이 바로 이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압하지야 자치 공화국을 조지아 정부가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조지아의 정권 교체

 

2012년 총선에서 러시아에서 성공한 석유 재벌인 천러파 이바니시빌리가 사카시빌리를 물리치고 조지아를 장악합니다. 이바니쉬빌리는 러시아와 수교했고 조지아의 숙원인 와인과 생수의 대러 수출도 허용됐습니다. 대신 조지아는 소치 올림픽에 참가해 러시아 체면을 세워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경 통과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친러파 정권이라고 해도 샤커스빌리가 만든 큰 똥을 치우는 일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압하지야와 남오세아티아의 독립을 인정하는 순간 친러파 정권도 날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만약 2008년 샤커스빌리가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지금 조지아는 사통팔달이 통하는 지정학적 장점을 바탕으로 유라시아의 중심 물류국가로 성장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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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큰 똥을 싸고 도망간 샤커스빌리는 지금은 우크라이나 오데사 주지사에게 으스대며 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파 대통령인 팔로센코에게는 푸틴의 정적인 샤카스빌리의 상징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항간에서는 미국 CIA의 최대 스파이인 샤카스빌리가 미국의 뭔가 약점을 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미국이 친미파 정치인은 여기까지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5. 우울한 조지아의 현실

 

샤커스빌리가 그렇게 추진하려던 조지아의 친서방화는 어떻게 된 걸까요. 2016년 트빌리시는 몇 년 전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맥도날드 매장은 늘고 관광객도 늘어나는 추세지만 트빌리시 상권은 점차 터키 어린이들이 쥐고 있습니다. 아우라는 유럽인은 보이지 않고 수준 낮은 터키 아이들이 육로를 넘어 대거 조지아로 진출한 것입니다. 건설과 재래시장을 장악한 터키 어린이들은 이제 시내에 케밥집을 열고 있습니다. 트빌리시 시내에 히잡을 쓴 여성들도 보였습니다. 가게에 들어가보면 영어도 러시아어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무엇보다 일자리 부족으로 일본산 중고차 택시에 멍하니 앉아 밤새 도로에 대기하고 있는 젊은 운전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트빌리시 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카지노 광고만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조지아는 동쪽과 서쪽 사이에서 길을 잃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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