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싸이월드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오프라인 지인과 소통하고 개인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새로운 개념의 인터넷 서비스였습니다.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시기도 적절했죠. 미국의 한 방송에서는 싸이월드를 한국이 앞서가는 아이티 문화를 소개하기도 했으며 하버드생 싸이월드를 공부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싸이월드의 몰락은 모바일에서 시작되었죠.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후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회사들은 발 빠르게 모바일에 최적화된 앱을 출시했지만 싸이월드는 여전히 pc 중심의 서비스에만 의존했죠. 이에 따라 이용자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싸이월드의 성장과 몰락 이야기 목차
1. 싸이월드의 시작과 고전
싸이월드의 시작은 1998년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에 동아리 회원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줬는데요. 회원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인맥 구축을 중심으로 하는 사이트 아이디어를 낸 것이었죠. 그렇게 2천년 9월 사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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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초창기 싸이월드는 별다른 인기를 끌지는 못했는데요. 가입자 1천만 명을 보유했던 프리챌 이 크게 밀렸기 때문이죠. 프리챌 은 당시 혁신적이었던 커뮤니티 기능으로 큰 인기를 끌어 다음 카페보다 규모는 컸으며 야후까지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창업 이후 몇 년간 특별한 성장을 하지 못한 싸이월드는 마지막 사흘을 건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당시 회사는 직원 월급의 절반 정도만 줬을 정도로 어려웠기 때문에 반드시 성과물을 내놔야만 했습니다.
2. 미니홈피의 대성공
그렇게 2001년 미니홈피가 문을 열었는데 우리가 기억하는 미니룸 도토리와 같은 싸이월드 전성기 모습이 만들어졌죠. 미니홈피는 오프라인 지인과 소통하고 개인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새로운 개념의 인터넷 서비스였습니다.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시기도 적절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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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프리챌 이 돈을 받기 시작하자 프리챌 이용자들이 대거 싸이월드를 이탈하면서 싸이월드의 하루 평균 가입자가 두 배로 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방문자가 급증하기 시작하자 트래픽 증가를 감당하지 못해 서버가 다운되기 일쑤였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불만은 폭주했죠. 결국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에 인수되면서 접속 사정은 개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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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들은 미니룸을 꾸미고 배경 음악을 고르는 등 자신만의 개성 있는 홈피로 만들어 갔습니다. 배경음악 서비스로 당시 인기 있던 가요들을 알 수 있었죠. 어제, 겁쟁이, 여인의 향기, 에스지 워너비, 프리스타일의 와이, 박효신의 눈을 꽃 같은 노래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결국 무료로 즐기기 위해 싸이월드를 향했던 이용자들이 자신의 미니홈피를 꾸미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죠. 이를 위해 사용되는 가상화폐인 도토리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수익 모델로 주목받았습니다. 미국의 한 방송에서는 싸이월드를 한국이 앞서가는 아이티 문화를 소개하기도 했으며 하버드생 싸이월드를 공부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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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였습니다. 저커버그는 싸이월드를 공부한 후 페이스북을 창립하여 그야말로 초대박을 냈죠. 싸이월드는 페이스북보다 앞선 sns로 1촌을 맺은 친구들에게만 보이게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 씨이하냐라고 물으며 1촌을 맺고 1촌 평으로 친밀도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또한 1촌의 1촌을 통해 미니홈피를 방문하는 파도타기는 인간관계 확장에 기여하기도 했죠. 실제 연구팀에서 싸이월드를 조사한 결과 7명만 거치면 전 국민이 아는 사람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사이얼드 이용자 가운데 4천 명을 뽑아서 두 사람이 몇 단계를 거치면 서로 만나게 되는지를 조사했다고 하죠.
3. 싸이월드에 관한 추억들
그때 우리는 좋아하는 이성 친구 미니홈피를 몰래 찾아보고 방문자 수에 집착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누가 내 미니홈피를 방문했는지 궁금해했는데요. 이런 심리를 활용하여 누군가는 돈을 받고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해 주기도 했죠. 그리고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이 추가되면서 사이월드는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사진을 미니홈피에 공유하면서 지인들과 소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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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로 인해 많은 흑역사도 탄생했는데요.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처럼 지나친 감성을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짤들은 지금까지도 돌아다니며 조롱받고 있죠 결국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는 대한민국의 대표 sns로 자리 잡았고 3천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용하는 엄청난 실적을 기록합니다. 도토리 수익은 무려 1천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죠.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는 것처럼 당시에는 매일 싸이월드에 접속하다 보니 싸이폐인이라는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4. 싸이월드의 몰락
하지만 싸이월드는 극적일 정도로 빠르게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싸이월드의 성공은 하버드 대학교 교재에도 실렸습니다. 여기에서는 사이월드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더 발전하기 위한 세 가지 요소도 제시되었습니다. 유료 아이템 광고, 그리고 모바일 네트워킹인데요. 잘 아시는 것처럼 싸이월드의 몰락은 모바일에서 시작되었죠.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후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회사들은 발 빠르게 모바일에 최적화된 앱을 출시했지만 싸이월드는 여전히 pc 중심의 서비스에만 의존했죠. 이에 따라 이용자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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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사이월드는 뒤늦게 모바일 시대 적응을 시도했지만 경쟁사들과의 격차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죠. 여기에 더해 sk 계열사인 점이 발목을 잡았는데요. 새로운 서비스는 sk텔레콤 이용자에 우선 제공되고 다른 통신사 이용자들은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었죠. 또한 당시 1등 메신저 네이트는 문자 메시지 수익 감소를 우려하는 모 회사의 눈치를 보고 모바일 대응을 망설였고 새로 등장한 카카오톡에 시장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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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카카오톡은 국민 메신저가 되고 이와 연계된 카카오스토리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싸이월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집니다. 그리고 2011년 싸이월드의 회원정보가 해킹으로 유출되면서 이용자들의 이탈은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이처럼 싸이월드는 모바일 환경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실패 요인으로 꼽히며 그 시절 이용자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싸이월드의 사진첩이 하나둘 복구되고 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죠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이야기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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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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