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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 그룹이야기 : 창업주 이용태의 성공 가도

by 리얼(리딩방 리더) 2024. 2. 14.

이용태는 미국 유타대학교에서 통계물리학 박사과정을 밟았습니다. 이때 처음 접한 컴퓨터를 보고 이것이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귀국 후 컴퓨터 회사를 설립할 것입니다. 회사 이름은 삼보입니다. 삼보는 인재, 기술, 서비스라는 세 가지 보물을 뜻한다고 합니다. 1980년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자본금 1천만원에 직원 7명으로 시작한 삼보는 1세대 벤처기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뒤 한국 최초의 PC가 출시된 대한민국 아이티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삼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아이티 그룹으로 떠올랐습니다. 1997년 매출액 1조원을 기록했고, 3년 만에 매출액 4조원을 돌파하며 급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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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 그룹이야기 : 창업주 이용태의 성공 가도 목차

 1. 삼보 창업주 이용태의 출생과 성장​

2. 종로 학원가의 스타강사​

3. 미래는 컴퓨터가 좌우한다 : 삼보의 창업​

 4. 삼보의 성장 : 체인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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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보 창업주 이용태의 출생과 성장

 

삼보 창업주 이용태는 1933년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뿌리 깊은 유림으로 고향집인 충효장은 중요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죠 조부는 일본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항일운동을 하다 투옥된 적이 있으며 독립운동을 위해 하와이 망명까지 계획했으나 어른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손자 이용태가 일제 치하에서 교육받는 것에 반대했는데요. 당시 학교는 일본인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겼다고 하죠. 때문에 이용태는 10살 때까지 논어, 맹자 등 한문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이후에도 조부의 완강한 반대로 인해 학교는 다니다 중간에 그만두었고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를 통과했습니다. 이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들어갔는데 대학교 전체 차석 물리학과 전체 수석으로 입학합니다.

 

2. 종로 학원가의 스타강사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대단한데요. 과거에는 소 팔아서 공부 시킨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죠. 1950년대에는 안전필 강사가 유명했는데 종로 2가의 이엠아이 학원을 세워 종로를 학원 중심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영어교재를 집필했고 한강의에 무려 1천 명이 넘는 수강생을 몰고 다니는 스타 강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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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필과 함께 5 60년대를 풍미했던 스타 강사로는 이준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용태 회장이었습니다. 1954년 이준이라는 가명으로 강의를 시작한 이용태는 인기 강사가 되었고 이러한 인기를 기반으로 종로 일가의 제일학원과 대일학원을 설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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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학원가에서는 제일학원이 돈을 자루에 긁어 모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죠. 충분한 돈을 마련한 이용태는 학원 운영을 공동 창업자들에게 맡기고 염원했던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그가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제일학원과 대일학원은 크게 성장했다고 하죠. 

 

3. 미래는 컴퓨터가 좌우한다 : 삼보의 창업


여담으로 시간이 흘러 1970년대에는 정석과 성문의 시대 수학의 정석은 지금까지도 인기 참고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용태는 미국 유타대학교에서 통계 물리학 박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이때 처음 접하게 된 컴퓨터를 보고 이것이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고 하죠. 이에 따라 귀국 후에 컴퓨터 회사를 설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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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이름은 삼보인데요. 삼보는 인재, 기술, 서비스라는 세 가지 보물을 뜻한다고 하죠. 1980년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자본금 1천만 원에 직원 7명으로 출발한 삼보는 1세대 벤처기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뒤 한국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가 출시 대한민국 아이티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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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디자인과 기능을 개량한 뒤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렸는데요. 캐나다에서 바로 주문이 들어오면서 사상 처음으로 컴퓨터를 수출하는 감격을 맛봤습니다. 1982년에는 두 번째 컴퓨터 트라이즘으로 가정 상용화 시대를 열었고 오랜 시간 국내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4. 삼보의 성장 : 체인지업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90년대 컴퓨터 구매자들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당시 최신 컴퓨터 가격은 약 200만 원으로 상당히 비싸는데 현재 기준으로 약 400만 원에 해당됩니다. 문제는 컴퓨터의 발전 속도는 매우 빨라서 최신형을 구매해도 2년만 지나면 낙후된 모델로 전락되곤 했습니다. 적당한 사양을 구입하면 2년 뒤에도 충분히 쓸 만한 현재와는 대조적이죠. 소비자들은 이런 상황에 불만이 있었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를 구입하고 2년 뒤 다시 거금을 들여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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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삼보는 이러한 상황을 마케팅으로 활용 체인지업 시리즈를 발매합니다. 체인지업은 구입 2년 후 무상으로 cpu와 메인보드를 최고 사형으로 교체해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당시 cpu와 메인보드 가격만 해도 100만 원이 넘는 높은 가격이었죠. 그리고 제품의 모델이 변화구 체인지업의 이름과 같다는 것을 차간 당시 코리안 특급으로 칭송받던 메이저리그 박천우를 광고 모델로 기용합니다. 광고 말미 2년 후에는 더 강해집니다라는 멘트가 인상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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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브랜드 네임도 박찬호의 등번호인 61번을 딴 드림식스 61 체인지업으로 정했습니다. 참고로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박찬호의 승부구를 체인지업으로 오해하곤 했죠. 사실 당시 박찬호의 주무기는 강석구와 커브 슬라이더였으며 체인지업은 잘 던지지 않았습니다. 커리어 말기 구속이 떨어진 이후에 체인지업을 연마하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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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후 무상 업그레이드 온 국민의 성원을 받고 있던 박찬호의 이미지 이들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데이트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출시 2년을 맞게 되자 약속한 대로 무상으로 업그레이드를 진행 소비자들은 삼보의 무한한 신뢰를 가질 수밖에 없었죠. 삼보는 수거된 부품을 제3국가에 되팔아 비용을 회복한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당시 컴퓨터의 발전 속도가 너무 높아 제값을 받고 판매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체인지업의 대박에 비해 교체 비용으로 큰 이득을 얻지는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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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삼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아이티 그룹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1997년 매출액 1조 원을 기록 3년 후 매출액 4조 원을 돌파하면서 급성장을 하였습니다. 이 시기 삼보는 대기업에 지정되고 창업자 이용태 회장은 전경련 부회장으로 활동했죠. 하지만 삼보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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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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