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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역사 총수의 독단으로 인한 몰락의 길 The History of Kumho Asiana Group: How the Group's Dictatorship Led to Its Downfall

by 리얼 2024. 3. 13.

2002년 금호그룹은 터닝포인트를 맞이합니다. 박인천 창업주의 셋째 아들 박삼구가 회장으로 취임한 것입니다. 금호그룹에 깊은 어둠이 다가왔습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한때 최고의 캐시카우를 보유해 망하기가 더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보험, 타이어, 항공, 석유화학, 고속버스 등 막강한 계열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금호그룹은 승자의 저주에 빠져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는 총수의 독단을 막을 장치가 없었다는 점은 한국 재벌의 문제점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역사 : 총수의 독단으로 인한 몰락의 길 목차

1. 박삼구 회장 취임

2. 박삼구 회장의 건설업 진출

3.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분할

4. 무리한 사업확장의 결과

 

 

금호아시아나 그룹

 

 

1. 박삼구 회장 취임

 

그러다 2002년 금호그룹은 터닝 포인트를 맞이합니다. 박인천 창업주의 삼남 박삼구가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었죠. 금호그룹에 짙은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먼저 금호그룹의 가계도를 살펴보겠습니다. 박인천 창업주에게는 5남 3녀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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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가풍에 따라 여성들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고 아들들이 경영에 참여했습니다. 이들 형제들은 우애가 좋기로 소문난 집안이었으며 재계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고 하죠. 특이하게도 형제 공동 경영 합의서를 작성하여 그룹을 운영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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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10년 이상 그룹 회장을 하지 않을 것 두 번째 10년을 채우지 못해도 65세가 되면 물러날 것 세 번째 형제가 동일하게 지분을 보유할 것 그리고 박인천 창업주가 타계하자 장남인 박순용이 회장직을 이어받았습니다. 박성용 회장은 앞서 말씀드린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했으며 그룹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시간은 흘러 1996년 박성용 회장은 약속대로 둘째인 박정구에게 회장직을 물려주었습니다. 박정구의 능력은 이미 검증된 상태였는데 적자에 허덕이던 금호타이어 사장에 올라 2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으며 금호타이어를 세계 수준의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이었죠. 외환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했으며 사업 다각화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 박삼구 회장의 건설업 진출

 

그러나 2002년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셋째 박삼구 회장이 4대 회장으로 올라갑니다. 그는 건설업을 주력 사업으로 성장시킨다는 목적 하에 대우건설을 6조 4천억 원에 인수합니다. 당시 업계에서 생각하는 대우건설의 가치 3조 원의 두 배가 넘는 금액으로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하죠. 문제는 6조 원이 넘는 금액의 조달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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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그룹이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돈은 그 절반에 불과했고 나머지 금액은 사모펀드 등을 통해 끌어모았습니다. 그리고 사모펀드를 통해 조달한 금액은 주식 의결권을 위임받는 대신 풋백 옵션을 체결합니다. 대우건설 주가가 기대에 이하일 경우 비싸게 매입해주겠다는 계약이었죠. 여기에 더해 대한통운을 4조 1천억 원에 인수하면서 순식간에 재계 7위에 올라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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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경제가 호황일 때나 먹히는 전략이었고 박삼구 회장의 기대와는 다르게 상황은 점차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2008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심각한 자금난에 빠지게 되었죠. 재계에서는 승자의 저주라며 수근대기 시작합니다. 결국 금호는 유동성 위기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차례로 매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형제간의 우애가 금이 가기 시작한 것도 박삼구 회장 시절이었습니다.

 

3.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분할

 

사실 박삼구 회장은 45년생으로 65세를 넘기게 된 2010년에는 넷째인 박찬구에게 회장직을 넘겨야 했죠. 그러나 박삼구 회장은 형제 공동 경영 합의서를 수정합니다. 65세에 회장직에서 물러난다는 내용과 10년 동안만 유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삭제했죠. 여기에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를 계기로 형제 간의 갈등은 폭발합니다. 평소 박찬구 회장은 무리한 엠에이에 극심하게 반대했다고 하죠. 결국 금호그룹은 삼남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그룹 사남 박삼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분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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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금호석유화학도 경영권 전쟁을 치렀습니다. 박정구 회장의 아들인 박주현이 조카의 난을 일으키며 화제가 된 바 있죠 가만히 있으면 그에게 돌아올 몫이었던 그룹이 삼촌들의 다툼으로 쪼개졌고 그마저도 물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실패하고 말았고 박찬구 회장은 3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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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천 창업주는 유언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지만 결국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돈보단 형제간 우애가 중요하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형은 동생을 동생은 형을 챙겨라 몰락은 계속되어 금호그룹은 자본 잠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요 계열사들이 산업은행으로 넘어가며 워크아웃에 돌입하게 되었죠. 결국 금호렌터카는 케이티에서 다시 롯데로 가면서 현재의 롯데 렌터카가 되었고 금호생명은 현재의 케이디비생명이 되었죠.

 

4. 무리한 사업확장의 결과

 

그리고 박삼구 회장은 그룹 재건에 매달리며 무리한 인수전을 재개합니다. 금호산업과 금호고속을 다시 인수하는 데 성공했고 금호타이어도 되찾기 위해 자금을 끌어모았습니다. 2018년에 발생한 기내식 사건도 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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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는 기내식을 공급해오던 업체에 투자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하면서 새로운 회사와 계약을 체결합니다. 그러나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공급에 차질이 예상되자 소규모 업체에 일을 맡겼는데 감당이 안 된 것이었죠. 결국 기내식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출발이 지연되거나 기내식을 탑재하지 못하고 출발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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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은 급격히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재무제표에 문제가 있다며 3일간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죠. 결국 금호그룹은 무리한 인수와 매각으로 인한 경영 악화로 아시아나항공까지 매각을 결정합니다. 아시아나가 매각되면 사실상 금호고속과 금호산업만 남아 중견기업으로 강등된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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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 아시아나 그룹은 한때 최고의 캐시카우를 보유하면서 망하는 게 더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보험, 타이어, 항공, 석유화학, 고속버스 등 막강한 계열사들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금호그룹은 승자의 저주에 빠져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는 총수의 독단을 막을 장치가 없었다는 점은 한국 재벌의 문제점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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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재계 순위 7위에서 중견그룹으그로 몰락하게 된 금호그룹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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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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