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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그룹의 역사 창업과 성장 이야기

by 리얼(리딩방 리더) 2024. 2. 26.

현재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인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죠. 만일 합병이 지연되거나 불발 때면 아시아나의 신용등급 하락이 불가피합니다. 초기 등급인 bb까지 하향되게 되면 자체적인 자금 조달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죠 향후 사업 전망도 밝지 않습니다.

 

아시아나는 코로나19 기간 항공 운송에 주력하며 매출을 끌어올렸는데요. 코로나로 봉쇄했던 도시에서 물량이 쏟아져 나오면서 운송 비용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앞으로 운송 비용이 다시 하락할 경우 아시아나의 수익성은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때 대한항공 독점을 견제하던 유일한 항공사였던 아시아나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자 오늘은 금호그룹의 역사와 몰락한 이유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금호아시아나

 

목차 금호그룹의 역사 : 창업과 성장 이야기 목차

1. 금호그룹 창업 이야기

2. 금호고속의 설립

3. 아시아나 항공 특혜 논란

4. 박삼구 회장 취임

 

 

1. 금호그룹 창업 이야기

 

금호그룹의 창업주 박인천은 1901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습니다. 평소 사업에 관심이 많던 그는 쌀 도매상 등 여러 사업을 했지만 모두 실패하며 접어야 했습니다. 이후 경찰에 투신하기로 결심 순사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여 영광 경찰서에서 근무했다고 하죠. 이후 박인천은 일본군인 태평양 전쟁에서 연패종이란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러다 혼잣말로 이러다가 일본이 패망하는 게 아닐까 라고 중얼거렸는데 이를 들은 동료가 상세하게 보고하며 파면되고 말았습니다. 박인천이 파면당하고 나서 실제 일본은 패망했는데 박인천은 파면으로 반민특위 대상에서 제외되는 행운을 거머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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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드라마가 시작된 건 그의 나이 46세였습니다. 광주택시라는 간판을 내걸고 자동차 두 대로 영업을 시작한 것이었죠. 이곳이 한택 재계 순위 7위 그룹으로 성장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태였습니다. 자동차가 희귀했던 그 시절 광주 택시는 광주의 명물이었습니다. 광주에서 여유가 있다는 집에서는 결혼식 날 신랑 신부를 광주 택시에 태워 시내를 도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하죠. 당시 유행어는 돈 모아서 택시 한 번 타보세요였습니다.

 

2. 금호고속의 설립

 

이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박인천은 버스 웨이드 진출 금호고속이 설립되었죠. 사업성을 면밀히 조사한 뒤 광주 장성 광주 하선 노선을 시작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제법 큰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60년대까지는 수많은 버스 회사 중 하나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급성장하게 된 시점은 1971년도였습니다. 호남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금호고속은 날개를 달고 성장하기 시작했죠. 이렇듯 박인천의 사업은 승승장구했으나 타이어가 항상 부족하여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결국 타이어를 구매하는 대신 직접 생산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결정이 오늘날 세계 유명 타이어 메이커 중 하나인 금호타이어의 출발이었죠.

 

3. 아시아나 항공 특혜 논란

 

이외에도 금호석유화학, 금호건설 등의 계열사를 추가하면서 회사는 더욱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처럼 사업을 확장하던 금호그룹은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는데 대한항공에 이어 제2의 민항사로 선택된 것이었죠. 금호그룹은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민양사 사업권을 따냈습니다. 대한항공이 시장을 독점해 온 지 19년 만의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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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를 두고 뒷말이 많았는데요.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하기 하루 전날 일을 인가했기 때문이죠. 정부는 대한항공의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 경쟁 체제를 도입했다고 했지만 특혜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항공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국내 굴지의 기업들을 배제하고 근무를 선택한 것은 특혜로 비춰주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5공화국 정부의 임기 종료 하루 전날 허가한 것도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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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금모 관계자는 당시에도 그모는 물류 전문 회사로 인정받았다. 국내 고속버스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면이 반영된 것이라며 특혜설을 일축했습니다. 이렇듯 아시아나 항공은 전두환 정권의 마지막 특회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그리고 이후 전두환 대통령 부부가 아시아나 1등석을 무료로 외국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죠.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아시아나 측은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의 관행이다. 요금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는 항공기 물이 이용에 대한 규정은 없으며 더욱이 전두환은 이 같은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신분입니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호남 기업인 아시아나가 호남을 말사라라 한 전 씨에게 공짜 티켓을 줬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여담으로 아시아나를 가장 애용한 정치인은 김대중 대통령이었습니다. 국회의원을 지낼 때에도 거의 아시아나만 이용했다고 하며 아시아나 비행기가 대통령 전세기로 처음 이륙한 것도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었죠.

 

4. 박삼구 회장 취임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88년 2월 금호그룹은 서울항공을 출범 같은 해 12월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아시아나항공으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출항과 동시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되면서 아시아나는 황금기를 맞게 되었죠. 물론 항공기 추락 사고와 외환위기라는 큰 위기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노선과 항공기를 단축하는 노력으로 이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그러다 2002년 금호그룹은 터닝 포인트를 맞이합니다. 박인천 창업주의 삼남 박삼구가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었죠. 금호그룹에 짙은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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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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